아름다운 고장 칠곡 북삼읍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지명유래/설화전설

율리

북으로 인평리와 접하고, 마을 중앙으로 경부선 철도와 33번 국도가 관통하는데 그 남쪽을 내율, 북쪽을 외율이라 하며, 밤나무숲이 많았으므로 밤이 또는 배미(율동)이라 불렀다.

본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인데 행정구역 개편때 율동이라하고 북삼읍에 편입되었다.

율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안배미(내율) 밤나무가 많다고하여 밤골 · 율곡이라고 이름지어 불러왔다고 하며, 들판을 들배미(외율), 산쪽을 안배미(내율)이라 부른다. 내율의 뒷산 봉우리를 수리봉이라 하였는데 그 모양이 독수리 같이 생겼음에 연유하며,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이 행주형 즉, 배가는 모양이라고 한다. 약 350여년전에 설촌되었다 한다.
바깥배미(외율) · 들배미(야율) 여산송씨에 의하여 약 350여년전에 설촌되었다 하며, 마을이 인평들에 위치하고 있어 일명 들배미라고도 한다.

어로리

동편은 남류하고 있는 경호천과 접하고 4번 국도가 남북으로 종단하고 있다. 마을앞에 옛날에는 강이어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였고, 갈대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어부와 어전의 이름을 따라 어로동 이라하여 칠곡군 북삼읍에 편입되었다.

어로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어부골(어부동) 약 300여년전 이 마을 사람들이 경호천에 나가 고기를 잡아 생계를유지하여 왔다고해서 어부골이라 불려왔으며, 또 마을의 생긴 모양이 어부가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과 같아 어부골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논실 · 어전 옛날 이곳을 중심으로 갈대밭이 무성해서 마을 이름을 어전이라 했으며, 경신년(1920) 대홍수 때 수해로 인해 지금의 아랫논실로 터를 새로 잡아 나갔다고 한다.
이재민 1945년 해방이 되자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를 수용한 마을이기 때문에 이재민촌이라 부른다. 4번 국도변에 위치한 어부골로 들어가는 입구마을이다.
솔징이(송정) · 국개(국포) 약 300여년전에는 마을 앞이 강이었으며, 포구를 이루어 곡식 및 생활 필수품을 싣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당시 주막이 있었는데 소금장수를 비롯한 여러상인들이 주막에서 정박한 곳이라 해서 솔징이(송정)이라 했다. 그후 강이 없어지고 소(沼)가된 지역은 흙이 싸여 갯벌이 되었고, 마을 뒷산에는 들국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고 하여 국포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기점 솔징이에서 서쪽으로 약 1.5Km 지점인 서진산 산록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며, 옛날 이곳에 사기점이 있었다 해서 마을 이름도 사기점으로 불려 왔다.

보손리

마을의 중앙부를 4번 국도와 경호천이 평행하면서 남북으로 횡단하고 있는데, 이 국도를 좌우로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보손이라는 어진선비가 살았다하여 보손동이라 하였다. 본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보손과 평촌을 합하고 상재동과 국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보손동이라 하고 북삼읍 편입되었다.

보손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보손 옛날 이마을에 보손이라는 어진선비가 살았다해서 마을 이름도 보손이라 했는데, 지금의 보손 마을은 아랫뜸과 웃뜸 두 마을로 구분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옛 장터였던 장밭동, 남산골, 옆에 있는 서원터, 웅기점골, 방울암산 밑에 있는 사기점골 등 옛 유허지가 많이 있다.
상재원 언제 설촌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부근에 주막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길손들이 머물던 원터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4번 국도를 따라 위쪽을 상재원, 아래쪽을 하상재원이라 하며, 본래는 상재동이라 해서 한 마을이었는데 1905년 경부선철도(현국도)가 부설되면서 갈리게 되었다.
평촌 약 360여년전부터 영암산 산록에 정착한 마을로 골짝 마을이라고 「골뜸·골드미」라고 했는데 부근에 장밭들, 사기점골의 유허지가 있으며, 경신년 대수해후 온 마을이 현 위치로 옮겨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숭오리

북으로 금오산이 병풍처럼 옹립해 있고, 남으로는 경호천이 남류하면서 광활한 인평들을 형성하고 있다. 숭오동과 오평의 이름을 따서 숭오리라 하였다. 원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삼읍에 편입되었다.

숭오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태평리 금곡 남쪽 경호천변 국도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들판이 평평하고 넓은 곳에 마을이 자리잡아 태평동이라 하였다 하며, 임진왜란때 금오산성 남문통로의 입구로서 요충지였다고 한다.
지경리 김천시와 지경을 이루는 곳이라 해서 지경리라 하는데 약 60년 전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며, 마을 북쪽에 금오동천 계곡이 있어 피서지로 유명하다.
금곡리 설촌시대는 고려때로 추정되며, 금오산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금곡리라 한다.
숭산 금오산을 일명 남숭산이라고도 하여 마을 이름도 여기서 인용한 것이며, 강릉유씨의 집성촌이다.
강진 옛날 이곳에 경호천의 나루터가 있었다하여 강진으로 부르고 있으며, 설촌시대는 약 450여년전이다.
오성들 · 오선평 강진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이 마을 주변은 마치 부채처럼 펼쳐 우거진 숲속에 까마귀가 서식하고 있었다 해서 오선이라했다 한다.

인평리

북삼읍의 중심지로서 북으로 금오산이 우뚝 솟아 있고, 남으로는 인평들이 광활하게 전개되어 있다. 경부선과 33번 국도가 평행으로 동북에서 서남으로 관통하고 있다.원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대곡과 하대동·외율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칠곡군 북삼읍에 편입되었다.

인평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건도랑(건천) · 아랫대실 · 하대 이곳 개울에 물이 없다고 해서 건도랑이라 했는데 한편으로는 대실(죽곡 · 대곡) 아래쪽에 있다고 아랫대실 · 하대라고 했다. 지금은 면사무소를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가 모두 이곳에 위치해 있어 면의 중심지이다.

마을의 설촌시대는 미상이나 1910년대 후반 경부선 철도 부설시 최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정책하면서 마을이 크게 번창해 졌다고 전한다.
인평 건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약 400년전 해주오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들과 산에 숲이 널리 우거져 있다하여 임평이라 했으나 이후 마을 앞에 들이 생겨 넓은 들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 하여 인평리라고 부른다.
대실 · 죽곡 · 대죽 약 200여년전에 이 마을을 강정천이라는 선비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는데,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강선비의 이름을 따서 정청골(정청곡)이라 불러오다 정청곡 으로 표기가 바뀌었다. 마을 뒷산과 주위에 많은 자연성 대나무가 둘러져 있어 대실(죽곡)이라 부르다가 뒤에 대곡으로 바뀌었다.
광복골 인평리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경부선 철도변 마을로 1980년 구미공단 「(주)금성전선」사원주택을 이곳에다 조성, 54가구의 현대식주택으로 건립하여 집단입주해 온 마을이다. 1910년대(1914 ~ 1919) 이곳에 경부선 시설 공사때 산 허리를 잘랐는데 그때 마을 뒤편 공동묘지에서 이상한 빛이 계속 반복해서 비쳤다해서 이곳을 광복골이라 했는데 마을 이름도 여기에 연유한다. 한편으로는 문화촌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오평리

북삼읍의 동부지역으로서 옛날 말구리 나루터로 유명한 곳이며 낙동강과 연계하고 있어 모래와 구름이 발달하여 사리안 들을 만들었다. 본래 인동군 북삼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오평리이라 해서 칠곡군 북삼읍 편입됐다.

오평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오리골(오리) 오평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옛날부터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다 해서 오리로 불려왔는데 세월에 따라 오리로 표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간다리(간교) 마을 뒷산에서 흐르는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이 다리가 동네에서 간방에 있어 간교라 하고 마을 이름도 간다리(간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말구리(마진) 오리골의 동북쪽에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선창이 있었다고 하며, 옛날 한 선비가 말을 타고 가다가 이곳에서 말에서 떨어져 굴렀다고 해서 말구리로 불리게 되었다.
도속 · 도식 오리골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절이 있었는데, 절의 승려(도인)와 숙인 같이 살았다 하여 도속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사지 · 사호 · 사말리 옛날 이곳 사주에 호수가 있었다 해서 마을 이름도 사지 또는 사호리라고 불러 왔으며, 또 가좌 · 선창 · 하포 · 사지등 네 부락 중에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다고해서 사말리라고도 부르게 됐다. 현재 여산송씨가 주성이다.
가좌동 옛날 풍수설에 따라 이곳의 지세가 가지혈이라 해서 가지골로 불려 온 것이 세월에 따라 가좌골로 변음되었다.
선창 당산 모퉁이 동쪽 끝에 낙동강과 정하고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선창이 있었다고 한다.
아랫개(하포) 사말리 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인데, 갯들에 마을이 있다해서 아릿개·알깨로 불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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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삼읍남동민054)979-5272
최종수정일 :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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