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문화유산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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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한 점쟁이
조선 중엽 석적읍의 조양래(趙陽來)[자는 복초(復初) 호(號)는 양졸제(養拙濟)]는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고 점(占)을 잘 쳐서 세상사람들이 소강절(邵康節)이라 불렀다. 몇 가지 일화를 보아도, 귀신이 탄복할 경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농부가 전날 밤에 소를 도적 맞아 백방으로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마지막으로 조노인을 찾았다. 듣고 있던 조노인은 한참 그 사람을 훑어보거니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실물한 것을 찾기 위한 점괘는 뽑을 수 없소. 그러나 당신이 길가에서 갓을 쓴 채로 똥을 누고 있으면 방도가 생길 것이오."

소 주인은 마을로 돌아가, 시킨 대로 길가에서 갓을 쓰고 변을 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어른이 길가에서 변을 보는 것도 기이하거니와 용변할 때는 반드시 갓을 벗는 것이 예의인데, 갓을 쓴 채로 변을 보는 모양을 보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웃기도 하고 욕도 하였다. 그래도 소를 찾을 욕심으로 꾹 참고 있자니, 대여섯명의 장꾼들이 지나가면서 큰 소리로 지껄였다.
"참 변놈의 꼴도 다 보겠네! 어떤 놈은 소를 방안에 두더니, 갓 쓰고 똥누는 놈도 다 있네 그려."

소 주인은 이 말을 듣자 귀가 번쩍 띄어, 장꾼들에게 그 소가 있던 장소를 묻고, 즉시 달려가 소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 마을 어떤 노인이 장난삼아 조노인을 시험해 보려고 찾아갔다. 자기집 암소가 사흘전에 송아지 한마리를 낳았는데, 이것을 거짓말로,
"내가 사흘전에 손자를 보았는데, 손자놈의 평생 운수를 좀 보아 주시오."
하고 점을 청하였다.
조노인은 점괘를 뽑아 보더니,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노인이 캐 물으니,
"3년후에 도끼에 맞아 죽을 팔자이니, 굳이 말 할 필요가 있겠소?"
하는 것이었다. 하도 기막히게 맞추는데에 송아지 주인은 그만 감복하였다 한다.

산중에 힘센 장수들이 모여, 나라를 뒤엎을 역모를 꾀하고 있었는데, 두목은 자기들 운수를 여러곳의 점쟁이에게 점쳐 보고는, 그 자리에서 점쟁이 목을 베어 후환을 없게 하였다.
그 사나운 두목이 자기에게도 점을 치러 찾아올 것을 예견한 조노인은, 모래를 방안에 깔고 자기는 그 위에 누운 후, 석자되는 대나무대롱에 물을 넣어 배 위에 세운 후, 아들에게 일러 자기가 죽은 양, 병풍을 두르고 곡소리를 내게 하였다.

과연 얼마 후 두목이 찾아왔다. 아들이 부친의 임종을 알리니, 두목은 직접 괘를 빼 보았다. 그랬더니 점괘에 '背負黃沙하고 服相에 水高三尺'이라고 나왔다. 두목은, "모래 위에 누워, 배 위로 물이 석자'나 되니, 물에 빠져 죽었구나" 하며 그대로 돌아가고, 조노인은 감쪽같이 죽음을 면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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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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