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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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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돛대바위
돛대바위로도 불리는 신동 입석은 웃갓마을 아래쪽인 지천면 창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지석묘(支石墓)로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돛대바위는 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웃갓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졌는데, 웃갓마을이 배의 모양을 띄고 있다고 해서 돛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돛대바위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선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높이는 4.5m, 밑둘레는 2m이며, 묘의 면적은 897㎡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 돛대바위가 낙동강을 끼고 구릉지에 모여 살던 선사인들이 남긴 유물로 조상신을 숭배하거나 묘지를 표시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재희 옹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도 세 등분으로 나누어져 있던 돛대바위는 몇 년 전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구슬정 바로 위에 위치했다는 돛대바위가 세 등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돛대바위로 불리는 선돌의 서쪽 마을(웃갓)에 큰 부자가 강정듬에 구슬정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문중 모임이나 손님 접대 장소로 사용하였다.

어느 날 지나가던 과객이 정자 앞의 선돌을 자르면 가문이 번창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부자가 돌을 자르자 붉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 후 부자 집안은 망하게 되었고, 정자도 헐려 버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선돌의 중앙 부분에는 부러진 흔적이 있는데, 원래는 현재의 윗부분도 부러져 셋으로 동강나 있는 것을 보수하여 세운 것이란다.
2009년 현재 돛대바위 중간 부분은 구슬정 바로 아래 나무 밑에 있고, 돛대바위 윗부분은 그 곳에서 약 150m 정도 떨어진 길 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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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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