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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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표(張時杓) 1819년(순조19)~1894년(고종31)
명신. 초명은 응표, 호는 운고, 여헌의 후손, 인동부 진평리에서 봉상의 차자로 출생하여 증이조참판 보에게 입양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14,5세시에 벌써 경서에 통달했다. 1849년(헌종 15)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 주서, 전적, 정언, 지평, 장령, 집의, 교리, 수찬, 응교, 장락원정, 사복시정, 동부승지 등 옥당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외직으로, 현풍현감 및 함경도의 북청현감으로 나아갔다.

그후 병조참의를 거쳐 1886년(고종 23)에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부임치 않았으며 이어 가선대부에 올라,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북청현감 재임 시는 향교의 교폐를 바로잡고 흥학의 치적이 많아 당시 북청읍민들이 북청향교 및 만경재의 두곳에 공의 공적을 기리는 뜻으로 흥학비를 세웠고, 또한 북청을 떠나온 후에 또다시 거사비를 세웠다.

또한 내직에 있을때의 일이다. 경연에 입시하여서는 글의 뜻을 설명하고 행하는 것이 밝고 유창하니 왕이 참된 시강이라고 칭송하였다는 것이다.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의 대흥산에 묘소가 있으니, 사민헌 장복추가 묘비문을 지었고, 또한 참찬 곽종석이 지은 신도비문 이 문집에 실려 있다.
문헌(文獻)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교남지(嶠南誌), 운고문집(雲皐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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