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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염(申益恬) 1654년(효종5)~1702년(숙종28)
무신. 자는 안중, 본관은 평산, 병사 명전의 아들로 천성이 자상하고 충효가 겸전하였다.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등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이어 훈련원첨정, 오위도총부의 경력 고원군수, 도총도사, 훈련원부정, 훈련원정을 거쳐, 1693년(숙종 19)에 절충장군에 올라 충청도병마절도사로 나아갔다.

그 후 부호군, 장단부사, 선전관, 부사용, 경원부사, 함경북도수사 등을 역임하고 함경도의 북병사에 이르렀다. 공은 성품이 염결하여서 관직에 재임시는 청백하였으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자손의 생계를 꾀하지 않느냐」하니 「공이 웃으며 말하되, 백성은 가난하게 살고 관리는 살찌게 사는 것이 어찌 사대부의 할 일이냐, 가나 오나 말 한필에 채찍 하나만을 손에 잡는 것이 어찌 쾌한 일이 아니겠느냐」하였다.

회령에 재임시는 흉년이 들어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어사는 최상의 치적으로 보고하였고, 뒤에 고을 백성들이 추모비를 세워 공을 잊지 않았다.

문헌(文獻)
교남지(嶠南誌), 유서(諭書), 과지(科誌), 교지(敎旨), 하당권두인찬묘갈명(荷塘權斗寅撰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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