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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상(張宇相) 1642년(인조20)~1708년(숙종34)
무신, 초명은 우환, 자는 보경, 호는 침류정, 만회당 경우(慶遇)의 손이며, 증호조참판 원(原)의 아들이다.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의 부장, 훈련원의 주부, 판관을 거쳐 외직으로, 북진첨사로 나아갔으나 곧 사임하고 돌아왔다.

숙종 15년(1689)에 다시 오위도총부의 경력(經歷) 겸 태복시의 내승(內乘)으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되어 훈련원정으로 승서되고, 동왕 16년(1690)에 통영우후로 나갔다가 이어 우림위의 우림장으로 내천되었다.

그 후 숙종 17년(1691)에 외직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고, 이어 숙종 19년(1693)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숙종 34년 (1708) 10월 5일 향년 67세로 졸하니 조정에서 예관을 보내어, 치제케하고 인동의 온조동 안산에 장례하였다.

묘비가 있으니 경상도관찰사 홍만조가 비문을 지었고, 평산인 추천 신의균이 글씨를 썼다. 장군의 실기 1권과 유필이 후세에 전하고 있다.

문헌(文獻)
숙종실록(肅宗實錄), 옥산지(玉山志), 홍만조찬묘갈명(洪萬朝撰墓碣銘), 침류정실기(沈流亭實記), 교남지(嶠南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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