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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申瀏) 1619년(광해11)~1680년(숙종6)
무신. 자는 경숙, 호는 봉하, 본관은 평산, 우덕의 아들이다.

1645(인조 23)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끝에 1656년(효종 7) 함경도의 혜산첨사로 나아갔다. 1658년(효종 9) 청국의 원병요청으로 당시 함경북도의 병마우후로 있던 공은 제 2차 나선정벌의 영장으로 북병영의 정예포수 2백여명을 주축으로, 총병력 265명을 이끌고 만주의 헤이룽강까지 출병하여 우수한 전투능력을 발휘하여 남하하는 「러시아」의 「스테파노프」부대를 격파함으로써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당시 조(朝), 청(淸) 연합부대는 같은해 6월 10일 헤이룽강과 송화강 합류점 부근에서 「러시아」의 함대 11척을 요격하여 치열한 접전 끝에 조선소총부대의 분전으로 10척을 격파했다.

이 싸움에서 「러시아」의 사령관이하 2백 20명이 전사하여 헤이룽강에 진출한 「러시아」세력은 거의 궤멸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장군의 전승은 세계사와 국사위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러시아의 역사적 인 동「아시아」진출을 처음으로 저지했으며, 중로분쟁의 충격파가 조선에 파급되는 것을 방지하여 조국안보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군의 계속 주둔을 강요하는 청국의 외압을 감연히 배제하고 조기철군을 실현한 장군의 주체외교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해 9월에 전승의 공로로 가선대부에 승서되고 이어 김해부사, 경상좌수사, 경상좌병사, 장단부사, 황해병사, 황주목사, 삼도통제사를 역임한 후, 1677년(숙종 3) 포도대장에 이르렀다. 헤이룽강 출병때 장군의 전투기록인 북정일기는 17세기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에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약목의 숭무사에 제향하고 경내에 신도비가 있으니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지었다.

문헌(文獻)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북정일기(北征日記), 신통상실기(申統相實記), 인동읍지(仁同邑誌), 교남지(嶠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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