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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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영(李彦英) 1568년(선조1)~1639년(인조17)
문신. 자는 군현, 호는 완정 또는 완석정, 본관은 벽진, 좌랑 등림의 아들이다. 한강의 문인으로 선조 24년 (1591)에 생원이 되고, 동왕 26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망우당 곽재우가 의령에서 창의했다는 말을 듣고, 전마 40필을 끌고가 오운 조종도, 박성 등과 토적을 의논했다. 선조 29년에 효도로써 조정에 들려 참봉에 제수되고, 선조 36년(1603)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이 되었다. 광해군 5년(1613)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이 되었다.

광해군 5년(1613) 호조정랑에 이어 이듬해 정언에 승진되니, 당시 필선 정온이 항소를 올려 영창대군의 원사를 항의하다가 역적으로 몰리자, 공은 이를 변호하여, 삼사의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직강으로 복직되어, 사예, 장령,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를 거쳐 밀양, 청주, 선산의 부사를 역임했다. 인조 3년 공이 정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해 2월에 삼사가 인성군의 죄가 중국의 공숙단과 같다하여 극형에 논죄하는 것을 보고, 공이 갑자기 일어서서 춘추극단전을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면서 인성이 무슨 죄가 있어 숙단과 같으냐고 하여 대관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정묘호란때 분조를 따라 오랑캐가 우리나라를 겁맹하매 일이 정해지지 않는지라, 공이 강력히 말하기를 「폐단을 없애자면 모름지기 사를 버려야 할 것이요, 적을 없애자면 놀람을 버려야 할것이며, 부끄럼을 없애자면 화해하는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니 이 세가지를 버리지 않고서는 대사를 그르칠 것이라」하니 식자들이 모두 직언이라 하였다.
1639년 9월 16일 향년 72세로 졸하니, 참판 이민구가 묘지문을 짓고, 대제학 조경이 묘비문을 지었다. 문집이 있다.

문헌(文獻)
국조방목(國朝榜目),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거주지, 칠곡부읍지(漆谷府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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