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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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준(鄭命俊) 1900년(광무4)~1959년
독립운동가. 호는 흑도, 본관은 동래, 치운의 아들로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공은 성품이 강직할 뿐 아니라 도량이 넓고 재주와 기억력이 뛰어나 신구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날로 탄압과 온갖 횡포가 더욱 격심해지니 각처에서 이에 항거하는 배일사상이 점차 활발해져 갔다. 1925월 10월에 이르러 대구에서 서동성, 신모재, 방한상, 하종진, 서흑파, 김대산, 우해룡, 김동석 등의 동지와 더불어 노동공제회관에서 항일 운동 단체인 진우연맹을 조직했다.

비밀결사인 진우연맹은 무정부주의를 목적으로 권력과 탄압을 배척하기 위하여 진우연맹안에 별동대로 파괴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교란 암살은 물론 중요기관 파괴를 계획하고 활동하던 중 1926년 7월 여러 동지와 함께 일경에 피체되니, 또 중국 상해의 고자성, 고삼현, 류림 등으로부터 무기를 반입한 사실까지 일경에 탐지되어 1927년 7월 5일 대구 법원에서 2년형의 선고를 받고 옥고를 겪은 후 풀려 나왔다.

그 후, 일경의 눈을 피해 함경북도의 청진에서 상업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조국의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후 경북신문 편집국장,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 대구일보 주필, 편집국장, 영남일보 편집국장겸 주필등을 역임 했으며, 1959년 8월 22일 영남일보 재직중에 순직했다. 1958년 생존시에 제 3회 경북 문화상(언론부문)을 수상하였고, 1977년 독립유공으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문헌(文獻)
대한독립운동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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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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