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문화유산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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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의 공간입니다. 국가지정 문화재인 국보/보물/천연기념물/사적/중요문화재 등 여러문화재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칠곡 문화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선조(宣祖) 26년(1593) 팔거현이 있었던 곳에 경상좌·우도가 합치된 후, 경상감영(慶尙監營)을 이곳에 3년간 설치하였다가 달성(達城)으로 옮겼다.
그 후 팔거현은 인조(仁祖) 18년(1640) 순찰사(巡察使) 이명웅(李命雄)이 조정에 요청하여 가산에 성을 쌓게 하였는데 고을 수령(守令)이 산성을 다스리는 곳(현 星州)과 거리가 멀어서 드디어 팔거현이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로 승격시키게 되었다. 다스리는 곳을 산성 안에 두었으며 군위(軍威)·의흥(義興)·신령(信寧)·하양(河陽)도 관장하게 하였다.

순조(純祖) 19년(1819) 칠곡도호부의 관아(官衙)가 산정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아 팔거현의 본래의 땅 읍내(현 대구 북구 옛 칠곡읍)로 179년 만에 복귀하였으며 산성에는 별도로 성을 지키는 병사들만 두게 되었다.

선조 26년(1593) 도원수(都元帥) 한준겸이 천생산성(天生山城)의 수축을 요청하여 축조하기 시작하였고, 선조 38년(1605) 인동현이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로 승격되면서 약목현을 속현으로 관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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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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