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희생의 도시, 여가와 휴식이 있는 도시. 호국의 고장  칠곡. 관광명소


한티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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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를 기리고 피정을 위한 한티순교성지

병인박해 때 조 가롤로를 비롯하여 약 37명이 순교한 해발 600m 깊은 산중에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형성된 천주교 교우촌.
현재까지 확인된 37기의 순교자 묘는 오솔길을 따라 참배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으며, 깊은 고요 가운데 머물 수 있는 피정의 집도 갖추어져 있다
주소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길 69
문의전화
054-975-5151
관리처
미래전략과
홈페이지
www.hanti.or.kr
해발 600m의 깊은 산중에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형성된 천주교 교우촌이다.
원래 '큰 재'를 말하며 대구, 칠곡, 군위 경계의 오지로, 캐톨릭 신자들의 최종 피난처였다.
캐톨릭 신자들은, 신해사옥(1791, 정조15), 신유사옥(1801, 순조원년)을 비롯하여 을해박해(1815, 순조 115), 정해박해(1827, 순조 27), 기해사옥(1839, 헌종 5) 등으로 끊임없이 탄압 받았다. 을해박해 때는 경상도에서, 정해박해 때는 전라도에서 수백명의 신도가 수난을 당하였다.
신도들은 대구 인근의 산간벽지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았는데, 이때 정착한 곳이 바로 한티였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후에도 수차례나 포졸들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하게 되어, 오늘날 한티성지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천주교 교우촌으로는, 노래산(청송군 안덕면), 머루산(영양군 석보면)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 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 성지(경기도 광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묻힌 미리내 성지(경기도 안성), 김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충남 당진)와 함께 한티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 대구 대교구에서 성지 개발사업을 펴, 도로가 확장되고, 1991. 9.25에는 대형 "십자고각"(높이 14m)과 "피정의 집"(지하 2층, 지상 5층)을 준공하였다.
한티성지는 신나무골과 더불어 순교사를 되살리고 피정(고요한 곳으로 물러남) 연수를 위한 순례지로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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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미래전략과김은정054)979-6093
최종수정일 :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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