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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사 박귀희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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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어머니이자 국악교육의 선구자, 향사 박귀희 명창(1921~1993)

소녀명창의 등장

1921년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하판동(오늘날 송학리)에서 태어난 박귀희 명창은 8세 때 대구에 있는 외가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선생은 매일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국악전수소에서 귀동냥으로 판소리 단가(短歌)를 배웠는데
이것이 소리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명창 이화중선의 눈에 들어 대동가극단에 입단하였고
대구극장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뒤 전국을 누비며 ‘소녀명창’으로서 공연활동을 펼쳤다.

가야금 병창의 맥을 잇다

선생은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위해 수많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강태홍, 오태석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조학진, 유성준, 박동실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움으로써
가야금병창의 맥을 잇게 되었다. 가야금병창(竝唱)이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판소리와 민요 단가를 부르는 것으로
이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였던 선생은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가야금 병창)로 지정되었다.

국악의 어머니이자 국악교육의 선구자 국악의 어머니이자 국악교육의 선구자

한편 선생은 여성 국악인의 활발한 활동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광복 후 여성창극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창단하여 『옥중화』, 『햇님과 달님』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큰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 여성 창극사(唱劇史)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소리가 힘이 있고 강렬했던 선생은
창극계 최초로 남성역을 맡은 여성 국악인이었다. 이밖에 국내외에서 100여 회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소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국악교육의 선구자, 국악의 어머니 국악교육의 선구자, 국악의 어머니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국악교육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뜻 있는 국악인들과 함께 ‘국악예술학교(오늘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후학 양성과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한 선생은 생애 마지막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조건 없이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향사 박귀희 명창은
우리나라 국악교육의 선구자이자 국악의 어머니로서 시대를 앞서 나간 최고의 명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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